병무청 청춘예찬

[스크랩] 내 인생 가장 소중한 기회

조우옥 2014. 7. 26. 13:23

 

시간이란 놈은 잔인했다. 길고 길었던 입대준비기간... 올 것 같지 않던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자원입대를 했다고 해서 과연 기분 좋게 입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당시 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머릿속은 더욱

복잡했다. 기분 좋던 봄 날씨에서 더위가 느껴지던 초여름. 논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보냈던 시간, 친구들과 해맑게 웃고 지냈던 즐거운 시간 …….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신경섬유종증이라는 피부병이 있고 이 질병은 군 면제나 보충역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사유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초 신체검사때 4급 판정을 받는 나는 그때부터 현역복무와

공익근무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내가 살아온 인생 중에서 가장큰 고민과 갈등을 하게 되었다. 당시

부모님도 현역복무를 하는 것을 반대하셨고 나 또한 그냥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할까?’ 라고 생각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전우’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6.25 전쟁에 관련된 드라마였고, 그 드라마를 보고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형은 해군에서 복무 중이었다. 그날 밤 TV를 보고 있는데 천안함이 피격 당했다는 뉴스가 속보로 나왔고 해군에서 복무 중이던 형에 대한 걱정과 ‘내가

과연 이 상황에 집에서 TV만 보고 있어서 될 것인가?’ 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북한은 동포애, 민족애로

감싸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금 형을 위협하는 우리 가족을 위협하는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 천안함 피격사건을 계기로 나는 현역복무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나 하나쯤 군에

안가도 되겠지’ 라는 생각에서 ‘나라도 군에 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난 신체급수 재판정을 받고

자원입대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길로 난 병무청에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을 물어보았고 군에

입대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나의 신체가 병역을 이행하기에

문제가 없음을 입증하는 진단서를 발급 받아야 했고 병무청에 직접 신청서도 작성해서 제출하고 다시 검사를

받는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모든 서류를 준비하였고 병무청에 제출까지 완료하였다. 그렇게

군 복무를 위한 고생해서 준비한 나의 당찬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고 마침내 3급으로 급수가 나오면서

현역으로 입대를 허가받았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기피하는 현역 군 복무를스스로가 노력하고 신체적 제한사항을 극복해서 입대를 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지게 해주었다. 만약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했다면 난 자신에게 부끄러워지고 나의 수준을 한정짓고 패배자의 길을 걷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난 입대를 하게 되었고 신청했던 기술행정병 중에서 전공과 관련이 있었던 화생방제독병을 지원해서

합격을 하게 되어 훈련소에 입소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하루하루 힘든

훈련과 규칙적인 생활. 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에 익숙해져 있던 난 적응하기 어려웠고 내가 왜 이런 힘든 일을

선택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생활 속에서도 동기들의 전우애와 주말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힐링해주던 종교 활동 등 소소한 군생활의 재미를 찾아가며 훈련소 생활을 보냈다. 훈련소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것은 30km 야간 전술행군을 하며 잠깐이나마 주어진 휴식시간에 먹었던 초코OO였다.

그 맛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달콤함 중에서 최고였으며,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침내

훈련소를 수료하고 달지 못할 것 같고 멀게만 느껴지던 이등병 계급장을 달던 날. 10년처럼 느껴지던 한 달

만에 부모님을 다시 만났던 수료식날. 아들로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였지만 군복을 입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군인이라는 생각에 눈물만 글썽였을 뿐 울지는 못하였다. 그 날 난 그렇게 훈련병이 아닌 이병

장훈기라는 호칭을 얻었고 가슴에 계급장을 달고 군인이 되었다. 이 후 모두가 편할 것이라고 말하고 속칭 ‘병장체험’이라고 말하던 후반기 교육을 받기 위해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한 국군화생방학교로 가게 되었다.몇

주 하지 않았던 훈련소 생활이었지만 화생방학교는 모든 면에서 훈련소보다 편하였다. TV시청도 가능했고

흡연 또한 일정장소에서 통제 하에 가능했으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충성클럽을 이용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여러 통제 하에 소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를

만끽하며 나의 주특기인 화생방제독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고 알아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이론

숙지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실제로 장비를 조작하고 숙달하는 실습교육까지 알차게 짜여진 4주간의 기간을

보냈다. 그 4주 동안 가장 기억에 남고 나의 임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줬던 교관님의 말씀이 있다. 제독 담당

관이셨던 이창호 상사님이 수료하기 전날 우리를 강의실에 모아놓고는 “화생방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인원들은 방독면을 쓰고 그 자리를 즉시 이탈해야 하지만, 여기 있는 여러분! 제독병은 화생방 작전준비를

하고 오염지역으로 들어가 해당 지역과 인원들을 제독해야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한다.

제독병이라는 보직에 자부심을 가져라.”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만큼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는 주특기를 가졌음에 큰 감명을 받았고 제독병으로 지원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짧은 후반기 교육을 마친 나는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12화생방대대로 가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강원도 지역이고 앞으로 내가 여기에서 남은 군 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긴장되었고,

더운 날씨였지만 나의 몸은 강원도의 겨울처럼 얼어있었다. 하지만 즐겁고 유쾌하게 맞이해주신 대대장님과

여러 간부님들 덕분에 긴장은 점점 줄어들었고 점차 밝은모습으로 적응하게 되었다. 한참 더운 8월에는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지만 중대장님과 소대장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여건을 보장해주셔서 문제없이

이겨내었고 유명한 강원도 지역의 동장군 또한 이겨내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제독병의 임무와 함께 부대의

온수와 난방을 관리하는 보일러병 임무도 함께 수행하였으며 ‘13년 후반기 집중정신교육주에는 우수병사로

선발되어 상장과 포상외박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화생방부대에서만 경험해 볼 수 있는 화생방신속대응팀의

임무수행을 하기도 하며, 다시 한 번 제독병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하며 느낀

것은 ‘아! 내가 괜히 입대했구나! ’ 라는 후회보다는 ‘이것도 인생의 공부이고 경험이고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바꾸는 기회도 될 것이다.’ 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입대 후 나의 체중은 20Kg 가량

감량하였고 매일매일 체력단련을 하면서 체력이 증진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동기들과 지내다 보니

대화하는 요령 및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게 되었으며, 후임들이 생기게 됨에 따라 남을 이해하고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예전의 나처럼 현역복무와 공익근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여기 군대라는 곳은 좋은 점만 가득한 곳은 아니다. 통제를 당하고 밖에서 해오던 행동 또한

못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알게 되는 부모님에대한 사랑이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함에 있어서의 이해심과 배려심 등은 반드시 내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한 것을 배우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입대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입대를 앞두고 있다면 너무 우울해 하지만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았으면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면 ‘나 하나쯤 안가도 되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나라도 가면 어떨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용감하고 소신 있는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어떤 21개월이 될 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후회하고 시간만 보내는 군 생활이 될지 추억과

경험을 담아가는 보람찬 군 생활이 될지는 본인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이다. 무엇이라도 얻어가는

군 생활을 하길 바라며,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이, 12화생방대대원이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출처 : 청춘예찬
글쓴이 : 굳건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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