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의 현명한 선택
2년 2개월간의 해양경찰 전투순경으로 복무 후 제대한지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시절 기억에 아직까지도 나도 모르게 뿌듯한 미소를 짓곤 한다. 내가 이십대가
되어 가장 잘한 일들을 꼽을 때 항상 빼놓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해양경찰 전투순경으로서의
군 복무였다. 대학교 생활을 하던 중 입영통지서를 받았고 영장대로 군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한
발자국 물러나 지원입영을 선택 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전자전기 공학도이다. 전자와 전기는 배의 머리이고 핏줄이라고 생각한다. 배 한척을 진수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피와 땀을 필요로 한다. 나는 배에 생명을 불어넣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꿈이었다. 대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시추선 Thunder Horse를 건조하는 곳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Thunder Horse의 진수를
모두 마치고 그 웅장하고 거대한 시추선이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수만 분의 일의 노력이었을
뿐이지만 나의 손이 닿았다는 사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정이 들었다. 나는 바다와 그
바다 위를 항해하는 선박에 관해 더욱 더 알고 싶었고 직접 배에서 생활을 해보고 싶었기에 망설임 없이
지원을 하였다.
군복무를 경험하며 배운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군 입대 후 250톤급 경비함과 50톤급 경비정에서
2년간 생활하였다. 여기서 함과 정을 구분하는 방법은 200톤 이상이면 함, 그 이하면 정이라고 하여
일반적으로 함정이라고 하는 것은 200톤 이상과 이하의 모든 군사용 배를 지칭하는 말이다. 250톤급
경비함 내에선 기관원으로 배치가 되어 엔진의 시동 및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선박에 전기를 공급해
주는 발전기도 주로 다뤘다. 그와 동시에 여러 항법장치, 해상법규, 엔진 및 발전기의 구조와 원리 등을
공부하였고, 그 결과 보통은 해양경찰 전투순경으로서 단 한번 경험할 수 있는 해상종합훈련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해양경찰청장상을 수상하였다.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을 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군 복무를 하였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하는 군복무가 아닌, 스스로 동기유발이 되는 그런 군 생활이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영광이었다. 그 이후 50톤급 경비정에서 군 복무를 마무리 짓게 되었고, 그
곳에서 기관뿐만 아니라 항해원의 역할도 하였다. 여러 통신장치와 항법장치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조타실에서 배의 키를 잡아 조정하기도 하였다. 정말 많은 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역할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한, 과거 2년간의 군복무 중 배움뿐만 아니라 여러 경이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나는 해양경찰
전투순경이었지만 전환복무자였기에 해군 훈련소에서 훈련병 생활을 하였다. 훈련의 일환 중 하나가
군함에 승선해 보는 일이었고, 내가 승선했던 군함은 ‘광개토함’이었다. 광개토함은 한국형 구축함
(KDX-1)의 1번함으로 대우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해군 최초로 대공미사일을 탑재했고, 상세설계에서
건조까지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본격적인 헬기탑재(Super Lynx 1기를 탑재) 구축함이다. 나는
아버지가 대우조선소에서 근무를 하셨고, 대우조선소 인근에서 자랐기 때문에 광개토함이 건조되는
것을 보며 청소년기를 지냈다. 아버지께서는 순수 우리 기술로 군함을 건조한 것에 대에 자긍심을 갖고
계셨고, 주위 어른 분들도 자랑스럽게 나에게 광개토함에 대해 말씀하시곤 하였다. 그런 광개토함을
해군 훈련소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인연을 가졌을 뿐 아니라, 섬 하나 없는 배타적
경제수역 EEZ에서의 깜깜한 밤에 육지에선 볼 수 없었던 그 수많은 별과 유성과 하늘과의 경계를 짓는
수평선이 사방팔방으로 에워싸고 있는 경관을 봤다. 돌고래 무리들과 함께 항해를 하기도 하였고,
칠흑같이 어두운 저녁 바다 한가운데에서 불에 타고 있는 어선에 뛰어 들어가 인명을 구출하였으며,
수천마리의 갈매기들이 모여 흰빛을 띄는 작은 섬도 보았고, 나의 고향 인근의 바다를 항해하며
부모님과 고향 친구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도 겨우 2년이란 짧은 시간동안 이런
많은 경험을 한 것은 믿기지 않는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군 제대 후 나는 전자전기공학도로서 전공 공부에 매진하였고, 나의 군 복무 경험은 학업과 실제로
쓰이는 여러 항해 시스템 혹은 장비들과의 연결점이 되어 나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조타실 혹은 선장실에서 배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자동 제어할 수 있게 해주는 제품을 개발하고 싶었기에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서버 시스템 및 임베디드 시스템에 관한 강의를 들었고 군 복무 경험으로 얻은
연결점이 있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을 하였고 취업 준비를 하던 중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았다. 부산 기장군 소재 금오기전이라는 회사 연구원으로
공개채용 지원 후 면접을 보며 나의 목표, 나의 군 복무 경험, 전자전기 공학도로서의 비전 등을
PR하였고 그 결과 면접에 합격하였다. 지난 시간 해군의 일원으로서의 군복무 경험이 오늘 날 나에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지는 정말 몰랐다. 회사에서 현재 ENGINE CONTROL MONITORING SYSTEM, SPEED PICK-UP SENSOR, VIBRATION COMPENSATOR 등의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2년이란 시간은 지나고 보면 길지 않은 시간이다. 나는 국방의 의무를 특기병이라는 제도를 통해 내가 선택해 이행하였고 성공적인 군 복무를 하였다. 지나간 2년임과 동시에 앞으로도 기억할 2년이란 시간 동안 겪은 무수히 많은 경험들은 나를 강하게 해주었고, 나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게 만들어 주었다. 순간의 현명한 선택이 좋은 기회로 이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