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귀농'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실버문화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실버문화 중 하나가 귀농인데요, 인구구조의 변화와 웰빙 트렌드, 농촌에서의 평온한 삶에 대한 이상이 맞물려 귀농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매스컴은 이를 '귀농 붐'이라고 표현하며 귀농성공사례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귀농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몇 안 되고, 귀농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매스컴에서 다루는 귀농생활 이면에는 어떤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실제 귀농생활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현재 충남 청양에서 귀농생활 중이신 귀농 4년차 선배귀농인을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인터뷰한 선배귀농인은 누구?
-김익주 1962년 5월생 -2010년 11월 청양으로 귀농 -고향 및 귀농 전 거주지 : 서울
귀농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
Q. 귀농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귀농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어릴 적 외가가 시골이어서 방학 때마다 내려가곤 했는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그때 영향인지 내 인생의 말년에는 농촌에 내려가 살고 싶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습니다.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정리하고, 우연한 기회에 이곳 청양의 한 밤 농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중학교 선배님이더라고요.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농촌생활을 나중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가능한 일찍 시작해서 자리를 잡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게 귀농의 계기라 할 수 있겠지요.
Q. 귀농을 한다고 하셨을 때, 가족 분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A. 중학교 선배의 밤 농장 방문 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 레이더에 ‘귀농’이란 정보가 잡혔는데, 당신이 허락한다면 계속 추진해 볼 것이고, 만일 반대한다면 아예 진행을 하지 않으려 해요.” 당시 우리 가족의 여건상 온가족이 당장 귀농을 실현할 처지가 아니었고, 저 스스로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1년 정도 혼자 내려가 생활해 본 후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을 하려고 계획했고, 이 계획에 아내는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내의 동의와 지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Q. 귀농할 지역을 선정할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하셨나요? 청양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A. 귀농계획에 대한 아내의 승낙을 얻고 나니 무서울 게 없었어요. 우선 온라인을 통해 귀농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교육도 받고, 오프라인 귀농학교 과정도 이수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선배네 밤 농장도 다시 찾아 실질적인 조언도 구했어요. 그 과정에서 정리되는 생각이 ‘탁상에서 완벽한 준비를 하려다가는 끝이 없고, 시작도 못한다, 결심만 서면 시작해야 한다. 작목이 우선이면, 그 작목재배에 유리한 지역을 선정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크게 차이는 없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등등 이었습니다.
실질적인 경험과 정보를 얻기로 마음먹고, 선배네 밤 농장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선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너 귀농이라는 것을 만만하게 보지 마라.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나를 보고 쉽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말고 며칠 쉬다가 올라가 너 하던 일이나 계속해라. 귀농은 낭만이 아니다.’ 이렇게 3일 밤낮을 혼내더니 다음날 마을의 한 어르신을 같이 찾아뵙고 이렇게 소개하시더군요. “이 놈이 여기 내려와 살아보겠다고 하니, 어르신께서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귀농생활의 시작
Q. 귀농생활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셨을 텐데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A. 선배의 반대를 넘고, 지원군을 얻고는 상경하여 간단히 짐을 꾸려 다시 청양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어요. 1년간 생활비는 보내줄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집에서 귀농비용을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고생이 되더라도 시작해 보자. 단돈 6만9천원을 가지고 청양에 입성했습니다. 선배네 밤 농장을 거처로 농촌생활이 시작했습니다. 2010년 11월이었어요. 선배가 소개해 준 어르신 댁의 창고도 지어 드리고 용돈도 벌고, 또 그 어르신의 소개로 겨울 3개월 동안 광천에 있는 상토공장에서도 일하고, 주변의 공사현장, 농가의 품삯도 받아가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여 귀농자금을 마련했습니다.

Q. 농사를 처음 지으실 때 방법도 잘 모르고 노하우도 부족하셨을 텐데 이를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A. 머리 둘 집도 얻고, 농사지을 땅도 임대하여 2011년 봄, 드디어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생활 중에 텃밭도 일궈보지 않았던 터라, 농사의 農자도 알 지 못했어요. 그 어르신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매달렸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집에 가서, 오전에는 그 집 일을 도우며 배우고 오후에는 내 밭에서 그대로 따라 했어요. 농기계나 농기구는 그 집 것을 빌려 썼고요. 군청과 면사무소, 농업기술센터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입수하고, 틈틈이 영농 관련 교육을 받고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2011년에 논밭 약2500평, 2012년 약5100평, 2013년 약6200평의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Q. 청양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지역감정이나 지역관습과 관련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귀농인들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주민들과의 화합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 때문은 아닌 것 같고,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귀농인들은 도시물을 빼고 주민화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주민들은 귀농인들을 바라 볼 때 색안경을 끼지 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도 몇 년간 살아가면서 초기 1~2년 동안은 마을 주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러나 꾸준한 노력 끝에 이제는 동네 반장과 개발위원 등 마을 일을 맡으며 어울려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귀농생활
Q. 귀농한 지 4년차이신데 현재 농사 이외에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A. 이제는 귀농인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평범한 농사꾼이라는 말이 더 듣기 좋습니다. 2011년부터 3년간 청양군 귀농인협의회 대치지회장을 맡아 일하며, 대치면을 연고로 하거나 준비하는 예비귀농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웠고요, 지금도 청양군농업기술센터나 충남농업기술원, 기타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영농관련 교육을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귀농 초기에는 공장근로, 건설현장근로, 면사무소 파트타임, 일반농가 근로 등도 하여 생활비에 보태었는데, 농사일이 늘어나다 보니 그럴 겨를이 없어 지금은 농사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라고 일손이 부족한 형편이지요.
Q. 3년 귀농생활을 하시면서 귀농한 것을 후회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없다면 3년 귀농생활 중에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요? A. 아직 후회는 없었고요.(후회했다면 진작에 짐 싸들고 서울로 올라갔을 겁니다.) 지금은 아내와 우리 막내가 청양에 내려와 있지만, 농촌생활 1년이 지났을 즈음 나름대로 정리해 보니, 가장 어려웠던 일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삼시 세끼 밥 해먹는 일, 그리고 세 번째는 농사일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첫 번째, 두 번째는 해결되었고, 세 번째도 해결하려고 노력중인데,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Q. 지금까지의 귀농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귀농 2년차 때였어요, 모내기를 위해 못자리를 집에서 키우는데, 환경 때문인지 잘 자라지 않더군요. 이리저리 물어보고 방법을 알아보던 중, 경험 많은 분이 비료를 물에 타서 주라는 겁니다. 그분은 희석 농도를 0.3퍼센트로 하라고 했는데, 잘못 알아듣고 그 100배인 30%의 농도로 뿌려 준 겁니다. ‘너무 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그대로 준 것이, 무슨 귀신에 홀린 거 같습니다. 결과는 못자리를 망쳐버렸지요. 약1000평에 심을 양이었는데, 기술센터에서 구입하여 심었지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경운기를 타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논이나 밭이나 물이 많아 수렁 진 곳에서는 경운기는 맥을 못 추고 빠져버리지요. 한 어르신께서 경운기가 빠졌을 때 나오려고 이리저리 애쓰다가는 더욱더 못 나오게 되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것이 점심 무렵이었는데, 그날 늦은 오후 퇴비를 잔뜩 싣고 수렁 밭에 빠져버렸습니다. 낮에 교육 받은 대로 그 어르신께 구원요청을 하였더니, “너 실습 한번 빨리 한다.” 하시더군요.
4년차 귀농선배로서...
Q. 귀농생활에 실패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귀농협의회 지회장 일을 보면서 가까이서 지내던 분들이 1~2년 만에 농촌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모습을 몇 차례 보았습니다. 한 분은 귀농을 너무 쉽게 여기고 시작한 것 같습니다. 기반을 잡는 도중에 어려움을 넘지 못하고 갑자기 정리하고 올라가시더군요. 한 분은 도시에 사업체를 두고 양쪽 생활을 하시다가 그게 벅차니까 이곳을 정리하셨어요. 한 분은 부부간의 의견차이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이혼까지 하시고, 그분도 이곳을 떠났습니다. 또 한 분은 농사 준비를 하시다가 지쳐서 포기하신 분도 계시고...
그런데 저는 그 분들이 귀농에는 실패라 하겠지만,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귀중한 경험을 한 거지요. ‘귀농실패’란 단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네요. 허허

Q. 현재 귀농을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에는 있지만 실행을 망설이는 분이나 귀농을 준비하시는 예비귀농인들께는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귀농은 생활입니다. 책상 위에서의 완벽한 계획도 농촌 현장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러기가 더 쉽습니다. 변수가 많기 때문이에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감내할 결단이 있으면 시작하는 겁니다. 또 하나 너무 서두르거나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1~2년 안에 모든 것이 결정 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진제공: 김익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