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원병역이행자의 건강법
얼마 전“살인자의 건강법”이라는 인상적이고 다소 기괴하기까지한 제목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책에는 나처럼 연골에 심각한 병을 가지고 있는 대문호가 등장한다. 나처럼? 그렇다. 나는
‘류머티스 관절염’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하지만 동시에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멀쩡히
군복무를 이행하고 있는 현역 공군 병사이기도 하다. 어떻게 난치병 환자에서 듬직한 대한민국
하늘의 정예 공군이 되었는지 나의 건강비결을,“자원병역이행자의 건강법”에 대해서 오늘 여기서
말해볼까 한다.
2005년 2월 어느 아침, 시린 겨울바람 같은 통증이 손목과 발목을 파고들었다. 마치 칼로 찌르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부모님도 당황하셔서 어쩔 줄 모르시다가 일주일 후에야 어린 나를 데리고 병원을
돌아다니셨다. 6개월 동안 안 가본 곳 없이 여기저기 동네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작은 상주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대학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은 후에야 ‘류머티스 관절염’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받게 되었다.
‘류머티스 관절염’은 자가 면역 질환의 일종으로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대게 손목과 발목이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처럼 부어오르고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동반한다. 게다가 하루의 반나절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해서 누워서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질병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13살이라는 나이에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란 말인가. 담당교수님의 말로는 절대 완치는 불가능하고 약물치료와 수술을 꼭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어렸기 때문에 수술은 포기하고 약물치료만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약물치료라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약물이 엄청 독해 하루 종일 기분이 엉망이었고 위와 간도 나빠졌다.
평생 이런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치료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소한 소망을 이루기 위한 대가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컸다. 그렇게 6년이라는
치료기간이 지나갈 때 쯤 그렇게도 나를 괴롭히던 고통이 차츰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또래의 친구들처럼
활발하게 뛰어놀 수는 없었지만 가볍게 운동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를 난치병 환자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질병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던 나는
더 이상 소심했던 초등학생 ‘박순호’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숙한 인간 ‘박순호’가 되어있었다. 나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욕심을 부려 내 평범한 소망을 방해하는 마지막 벽을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4급 공익 판정을 받은 징병검사 결과를 번복하고 조국의 푸른 영공을 지키는 대한민국 공군이 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걱정하셨고 친구들마저 왜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하느냐고 말렸지만 결국 모두
나의 뜻을 이해해 주었고 대단하다며 지지해주었다. 무엇보다 8년 전 류머티즘 진단을 듣고 참담한 표정을
지으셨던 아버지가 뿌듯한 얼굴로 군대에서 얻을 것도 분명 많을 거라고 격려해주실 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가족, 친구들의 걱정과 격려 속에 2013년 6월 24일, 나는 대한민국 공군이 되었다. 무사히 입대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입대 첫 주부터 나를 집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군의관님에게 ‘저는 훈련 충분히 받을 수 있고 생활 잘 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설득해야만 했고, 동기들은
쉽게 해내는 훈련도 관절염을 앓고 있는 나에게는 무리가 될 때가 있었다. 겨우 그 때의 날씨만큼 이나
뜨거웠던 전우애로 버티며 훈련소와 기술학교를 수료하고 제3훈련비행단에 배속을 받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자대에 가면 엄청 편하다는 말만 믿었다가 혼도 많이 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어리고 세상을 몰랐는지 알게 되었다. 여태껏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생활에서도 선후배들을 대하며 나름
사회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입대 후에 생각을 하니 사회에서 내가 했던 말, 행동, 버릇들이 너무
부끄러웠다. 정말 사회생활이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군대라는 이름의‘작은 사회’이자
‘인격수행의 도장’에 와서 절실히 배우고 느낀 것 같다. 눈치와 표정관리,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보기,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보다도 혹독한 계급사회에서 배워나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어느덧 지내다보니 후임도 받게되고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임이 되자는 생각도 하면서
어떠한 일에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다가가는 태도를 몸에 익히게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대다수
청년들은 2년이라는 시간을 그낭 버리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군대 가기를 매우 꺼려한다. 심지어 아파서,
그들보다 더 못해서 군대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며 신(神)의 아들이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니 하는 막말을 하는데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종종 선·후임들이 내게 편한
공익근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고는 한다. 하지만 난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군에
입대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낀 군대, 난치병에 걸린 나를 이토록 평범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만들어 준 ‘건강법’이기까지 한 군대인데 후회할 리가 없다. 물론 나라고 해서 빛나는 청춘의 2년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제한된 자유, 계급사회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오는 압박감, 사회에서는 해보지도 못한 각종
훈련과 업무 역시 힘들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건강한 대한민국의 청년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권리이고 의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파보지 않은, 평범해 보지 않은 이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소망일 수도 있는 것이 군복무라는 것을 조금은 모두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제 군 생활 10개월째 접어든다. 생활에도 적응했고, 업무에 대한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후임들을 가르칠 입장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너무 익숙해져 있고 있던 나의 결심들, 내가 왜 군대를
오게 되었는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오게 되었는지 새록새록 떠올리게 되고 나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14개월의 복무기간 동안에도 이런 마음을 잊지 않으면서 다치지 않고
몸 건강하게 사회로 나가는 디딤돌을 잘 밟아 가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자원입대를 한 혹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해주고 싶다. 뉴스를 보면 사회지도층
자제들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병역비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그들이 진짜로 아파서 군대에 못 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버리는 것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 뒤에는
나처럼 현역입대를 하지 않아도 됨에도 자신의 귀한 몸과 시간을 조국에 받쳐가며 국가방위의 의무를 다하는
청년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말한 청년들은 당신들 중 한명일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군대 생활을 한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자부심을 가지며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군 생활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