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 청춘예찬

[스크랩] 인생역전, 국방고속도로!

조우옥 2014. 8. 25. 11:58

 

 

불안했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학교생활에 지쳐서 휴학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갔다. 일찍 입대한 친구들은 전역이 다되어 가는 때에 나는 정작 해 놓은 것도 없으면서 이리저리

맴돌다 다른 세계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차분히 생각한 결과 일단은

군복무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찬찬히 정보를 알아보며 조금이나마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급지원병’제도가 나의 눈에 딱 띄었다.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군복무를 하고 하사로 임관하여

일정 보수를 받으며 1년간 더 근무 하는 제도. 처음 결정을 했을 때 부모님과 친구들은 빨리 전역하는 것이

낫다며 극구 만류했지만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하고 소신껏 유급지원병으로 지원했다.

어차피 복학시기를 맞추기 위해 전역 후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던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라 생각되었고 보수도 아르바이트 하는 것 보다 훨씬 많아서 학비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2010년 5월. 22살의 나이로 다른 친구들 보다 조금 늦게 해군으로 입대하였다. 하지만 나이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어린 동기들도 많았지만 동갑이나 나이 많은 형들도 많았다. 또, 체력이 너무나 약해

견딜 수 있을까 했던 훈련들도 열외 없이 끝까지 해냈고, 병과 교육도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해군 제1함대에 배치를 받았다. 3년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근무했던 제2의 고향 같은

강원도 동해. 그곳에서 나는 함정에서 근무하며 본격적인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 병종을 선택할

때 너무도 난감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내가 과연 이 일들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학교 선배들과 교수님들은 이런 상황을 알고 군악대로 군복무하길 추천했지만 나는

군대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반병으로 지원했고, ‘병기’라는 병종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역시 쉽지 않았다. 공구는 얼마나 많고 듣도 보도 못한 기름들은 또 얼마나 많던지. 하지만 그것은 나의

성실함과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면서 곧 모든 것이 ‘척척’이었고, 일에도

자신감이 생기며 시키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비슷한 일과 속에서도

나의 군 생활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기회가 참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등병 때 나는 한국광복군 창설 70주년 및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국방부와 국가보훈처가 주최한

‘다시 부르는 나라사랑’이라는 군가 경연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해군 작전사령부로 파견을 갔던 때가

있었다. 각 함대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인원을 차출해 파견을 보냈었는데 다른 함정에서 생활해 볼 수 도

있고 군 생활을 하면서 음악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만나서 연습하는 속에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또한 매년 성탄절에 교회에서 성탄 전야 행사를 했었는데 바쁜 함(艦)

일정 속에서도 선후임 할 것 없이 참여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짬짬이 합창 연습을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당시 나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살아오면서 읽었던

책보다 훨씬 많이 읽은 것 같다. 그러자 문학

소년으로의 감수성이 샘솟았고 급기야 저녁

휴식시간을 이용해 시를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취미로

자 한 자 적어나가 던 것이 매일 한 편씩 써서 그 양 또한 어마어마해 졌을 무렵 국방부에서 매년

병영문학상을 개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얼마지

않아 제10회 병영문학상의 문이 열린다는 공문을

보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매일 써 왔던 시를

다듬어서 공모했고, 그 결과 내가 제출한 ‘시’가

입선으로 당선되며 작품집에 작품도 실리고 트로피도

받는 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사로 임관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기회는 많았다. 국방일보에 비교적 오랜 시간 한 함정에서 근무하면서

칭찬할 만한 동료를 칭찬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생활반장을 인계해준 동생 같은 수병을 칭찬해

정훈공보실에서 사진도 찍으러 오고 원고도 써 내서 국방일보에 실리기도 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국방일보를 보시며 정말 좋아하셨다. 지금도 내 방에 기사가 떡하니 걸려 있다. 또한 함정 근무를 하며

교양 강좌를 개설해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나는 전공인 음악으로 승조원에게

보컬(VOCAL) 강좌를 해 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고 예상외로 호응도

좋아서 열심히 준비한 나는 무한한 뿌듯함을 느끼며 주어진 시간을 채워나갔다. 이런 내용으로

국군방송(KFN TV) 에도 출연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기회도 가졌다. 친구들은 정말 군대에서 너처럼

다양하게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은근히 부러운 듯 말하곤 했었다.

 

이렇게 군 생활 동안 문학, 표어, 포스터 많은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고, 대학교 학점도 딸 수 있는 등

다양한 기회가 마련된 좋은 군 생활 여건 속에서 국방부 시계는 남들보다 곱절은 더 빨리 돌아가 어느덧

나를 3년 후 전역할 시간에 데려다 놓았다. 물론 힘든 일도 있고 지쳐 쓰러질 것 같던 순간도 있었지만

나 자신을 정말 강하게 성장시켜준 군대에 스스로 감사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눈앞에 닥친 일만 근근이

하던 내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처럼 군대에서의 3년은 내 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하사로 근무하는 동안 받은 월급을 매달 꾸준히 저축한 결과 학비도 마련해 전역 후

아르바이트, 봉사활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착실히 복학 준비를 해 가고 있다. 부사관으로 전역했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며 일자리 구하기가 훨씬 쉬웠고, 알게 모르게 몸에 밴 리더십을

발휘하며 어디서든 인정받고 일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군대는 국도가 아닌 고속도로였다. 눈앞에 잘 닦여진 길을 그대로 시원하게

달렸을 뿐인데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멋진

청년들이여 혹시라도 망설이고 있다면 멋있게 도전하여 지금 바로 국방고속도로를 달릴 것을

‘강추’합니다. 나도 앞으로도 군 복무하며 느꼈던 마음을 잃지 않고, 애국심으로 피 끓는 대한민국

예비역으로서 함께 해 나가겠다. 필승!

 

 

 

출처 : 청춘예찬
글쓴이 : 굳건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