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평도 포격 6주기, 우리는 아직 잊으면 안됩니다
지난 11월 23일은 연평도 포격이 있은지 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어느덧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듯 합니다. 그래서 아프지만 다시 기억해야만 하기에 다시 그 날로 돌아가봅니다.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북측의 포격을 받은 해병대원들이 K-9 자주포로 긴급 대응 사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국방부 블로그>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경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기습적으로 감행합니다. 이 사건으로 한국 해병대 故서정우 하사, 故문광욱 일병이 전사했으며 16여명의 군인이 중경상을 입었고 민간인 2명도 사망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파괴된 연평도의 민가. 사진 출처 : 국방부 블로그>
연평도 포격은 한국전쟁 휴전 협정 이후 최초로 한국의 영토를 직접 타격해 민간인이 사망한 북한의 불법적 도발이었습니다. 북한은 총 2차로 포탄을 쐈는데 쏜 170여발 중 80여 발이 연평도 땅 위에 떨어졌습니다. 연평도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북한은 2차 때 쏜 포탄이 모두 맞고 떨어진 곳이 인구 밀집 지역이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민가에 정밀타격을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북한은 한국이 훈련중단 요구를 무시하고 계속 훈련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포격을 했다고 했지만 한국 해병대의 호국훈련으로 연례로 시행하는 정상적인 군사 훈련이었으므로 북한의 꼬투리 잡기에 불과한 명분이었습니다. 북한은 한국 해병대의 포 사격 훈련이 끝나자마자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무차별 포격을 하게 됩니다. 북한군의 최초 포격 후 한국 해병대 자주포 부대도 13분 만에 대응 포격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교전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근무서는 연평부대 장병들. 사진 출처 : 국방부 블로그>
연평도 포격 이후 정부와 군의 노력으로 연평도는 빠르게 평화를 찾아갔습니다. 그 후로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 더욱 분명히 대응하기 위해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대응화력을 더욱 증강시키고 북한의 도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을 추가 배치했습니다.
천안한 침몰 사건이 있은지 8개월만에 벌어진 일이어서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됐었습니다. 북한은 영해에서 훈련하던 한국군을 공격했으며 무고한 민간인까지 피해를 입혀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샀습니다. 연평도 포격도발로 전사한 해병대 소속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장례는 해병대장으로 치러졌습니다. 화장된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이들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국가의 튼튼한 안보는 강한 국방력에 있음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 땅에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취재: 청춘예찬 대학생 기자 최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