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 청춘예찬

[스크랩] 대한민국 최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조우옥 2013. 10. 7. 05:21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세상에 풍운은 많이 일고

해와 달은 급하게 사람을 몰아붙이는데

이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어느새 벌써 서른 살이 되었으니

<소년 30세 시, 이회영>

 

오늘은 아주 특별한 인물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선생입니다.

이 분이 누군지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중국 여순감옥 박물관에 있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흉상>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 바로 이회영 선생입니다.

이회영 선생의 집안은 백사 이항복 이래 이유승(李裕承)에 이르기까지

9대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승판서, 참판을 지낸 손꼽히는 명문가였습니다.

재산 또한 몇 대에 걸쳐 풍족하게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산으로 가지고 있었던 토지가 지금의 명동 일대인데요,

토지만 해도 현시가로 600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었습니다.

모든 부귀, 명예, 안정을 뿌리치고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은

그 모든 것을 자금으로 마련한 뒤 그 해 겨울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합니다.

그리고 만주에서 무장독립투쟁의 시작이자

청산리 대첩의 주역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문 차원의 독립운동으로,

흔히들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한민국 최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 우당 이회영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설립된 신흥강습소에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으로 독립운동의 기초를 닦습니다.

학생들에게 군사교육과 일반 교육(역사, 지리, 한국어 등)을 가르치며

애국정신과 민족의식 그리고 항일정신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섰는데요,

일제에 의해 폐교될 때까지 약 3500여명의 생도들을 배출했으며,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에 의해 교육 받은 생도들은 후에

1920년 봉오동 전투, 1920년 의열단, 1940년 광복군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탄생한 수 많은 단체에는 신흥강습소 생도들이 포함돼 있었고,

그들의 활약은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쓴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의 큰 보람이었습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후에

농업 생산과 교육을 위한 교민자치단체 경학사(耕學社) 조직(1911), 

() 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조직(1924), 항일구국연맹 조직(1931)

그리고 이회영 선생을 필두로 상하이 북역 사건, 아모이 일본 영사관 폭파 사건,

천진항 일본 군수 물자 수송선 폭파 사건, 천진 일본 영사관 폭파 사건 등

잔인한 일본 제국주의의 근간을 흔들기 위한 의거는 사명감 속에 계속 실행됐습니다.

바로 이회영 선생의 꺼지지 않는 무장독립투쟁 이어져

이듬해 이봉창(李奉昌) 윤봉길(尹奉吉)폭탄 투척 의거가 실현된 것입니다.

 

 

<지금의 다롄의 모습. 이 곳에 있는 여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 뿐만 아니라 신채호 선생, 이회영 선생과 같은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국 머나먼 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193211월 선생은 다롄(大連) 항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65세 노인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몸서리쳐지는 고문을 받고 순국하시게 되었습니다.

 

우당 이회영선생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던 6형제.

독립운동에 모든 걸 바쳤던 6형제 중 5명은 중국대륙에서

아사(굶어죽는 것), 병사, 행방불명 되셨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조국의 해방을 보고 초대 부통령까지

지내게 되신 분이 바로 성재 이시영 선생 이십니다.

 

 

<국제연합일날 만세를 부르는 이시영 선생 출처 : 두산대백과>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조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물론,

본인들 스스로가 독립운동에 나선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또한 6형제,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어느 독립운동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례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귀족들을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대한민국 최초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보여줬던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본보기로 남아야 할 것 입니다.

 

서른 살의 청년 이회영이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예순여섯 살의 노인 이회영이 죽기 전에 답했다고 합니다.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취재 : 청춘예찬 대학생 기자 이한준)

 

출처 :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글쓴이 : 호박조우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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