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 군대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군대에 대해
학습활동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그러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때는 2010년 8월 30일. 이 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날 나는 홀로 진주 공군
훈련소에 들어갔다. 파르라니 짧은 머리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올 것만 같던 무언가 때문에 더운
여름에 내가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으셨던 부모님은 나에게 배웅없는 입대를
권하셨고 여자 친구 또한 학교수업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였다. 진주로 가는 버스에서 핸드폰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눈물을 훔쳤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스무 살 어린
나이의 나는 입대를 했다.
군 입대를 하기 전 나의 군 생활 목표는 하나였다. 다름 아닌 항공기상관측특기를 배정받는 것이다. 이
특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소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국에 일곱 개 뿐인 대기과학과를
다녔고 군대를 가기 전 선배들의 조언을 토대로 공군에 지원하게 되었다. 공군은 비행이라는 특성상
항공기상관측이라는 특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는 1년 365일 24시간 항상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하며 하늘의 변화를 관측하여 예보를 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 있어서 군대란
단순히 국방의 의무뿐만 아니라 학습기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특기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훈련하였고 1200명의 훈련병 중 최고 전사를 뽑는 대회에서 2위를 거둘
정도로 엄청난 기량을 뽐냈다. 결과는 탁월했다. 항공기상관측특기에 선발됨은 물론 특기학교에서의
성적과 남다른 리더십으로 자대를 원하는 곳으로 배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기상의 중심이자 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계룡으로 자대를 선택하였다. 육군에서의 계룡은 편한 곳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공군에서의 계룡은 사뭇 달랐다. 조금 더 엄격하였고 군기가 들어있는 부대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상의 중심에서 군복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계룡을 선택하는데 어떠한 것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자대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여자 친구의 집이 계룡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2010년 11월 10일.... ‘정말 군 생활이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계룡에 있는 제○○기상전대에 발을
내디뎠다. 훈련소에서 순탄했던 군 생활과는 달리 엄격한 규제와 고된 자대생활이 연거푸 지나갔고 직무
교육이 끝날 무렵 나는 첫 휴가를 3일 남겨두게 되었다. 하지만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달콤하게 꿈꾸던 첫 휴가는 무기한 연장이 되었고 입대한 지 130일이 되어서야 첫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있던 동안 편찮으신 할머니는 휴가 도중에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고 첫 휴가를
할머니의 장례식에 할애하였다. 그렇게 4박 5일이였던 휴가는 6박 7일이 되어서 복귀하게 되었다. 다시
부대 복귀하고 나니 선후임들 모두 나를 위로해 주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갔다.
자대에 와서 내가 부대에서 맡은 일은 바로 일기도 기입병이었다. 일기도 기입병은 일기도를 그리기 전에
기압 풍향 풍속 등과 같은 정보들을 빽빽하게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기상청에서 슈퍼컴퓨터가 하는 일을
내가 직접 함으로써 조금 더 알아가고 체득하게 되었다. 또한 기입 병은 공군의 기상정보시스템(기상만을
담당하는 서버)에 자료를 입력하여 전군에서 훈련 시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군 생활은 실제로 예보를 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의 능력을 쌓는 것이었다.
나는 단순한 기입병사에서 나아가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근무장에 올라가 배우고
학습하였다. 더 많은 것을 배워보고 싶었기에 후임병을 받자마자 나는 선임 부사관에게 건의하여 옥상에
있는 관측반으로 보직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관측반에서 하는 일은 하늘을 보며 현재 그 지점의 풍향
풍속 습도 온도 구름 등의 정보를 기상정보시스템에 입력하는 일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앞으로의 기상을
예측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실제 기상청에서 관측하는 방식보다 정교하고 예리하다. 오감을
통하여 하늘에 있는 구름의 높이뿐만 아니라 그날 비가 내릴 것인지 또한 수 시간 전에 예측이 가능했다.
관측병은 실제 기상상태를 통해 비행기의 이착륙에 관여한다. 가장 기억에 남던 비행은 바로 국군의 날에
헬리콥터를 타고 방문하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단순한 임무가 아니고 우리나라의 최고 사령관의
스케줄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나는 더 바쁘게 그리고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애쓰고 달려갔다.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늘이다. 하늘은 사람과도
비슷하다. 매번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생김을 달리하고 변덕스럽게 변하기도 하고 깨끗하기 도하고
짓궂기도 하다. 1년 넘게 많은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내가 정말 감동하였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의
밤하늘이다. 군부대의 특성상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빛이 적다. 이 때문에 밤하늘의 별을
보며 마음속에 쌓여있던 고뇌와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군 생활에서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이 바로 하늘이 아닐까 싶다.
나는 긍정적인 생각과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하는 자세로 군 생활에 임했고 생활관장(분대장)과 여러 직책을
맡으며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2012년 9월 4일 기나긴 736일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나는
전역을 하였다. 전역을 하고 나서 바로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학습을 하였고 미친 듯이 일과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 결과 학과에서 1등을 하였고 전공 교수님과 선후배들에게 인정받는 학생으로 평가되었다.
이렇게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었던 밑바탕은 군대에서 학습한 지식들과 더욱 더 성숙하고 전념할 수
있는 사고라고 나는 평가한다. 활자로 배우는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다. 군 생활에서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헤쳐 나가며 성숙해가는 것 또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공부가 아닐까 싶다. 내가 군대에서 얻은 것들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람이다. 정말 힘들 때 옆에서 응원해주는 동기들과 선․후임들이 있었기에 나름
순탄하게 군 생활을 헤쳐나간 것 같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는 전역을 하고 나서도 서로 연락을 하며
모임을 갖곤 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지역,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과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군대를 흔히 작은 사회라고 빗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인 것 같다.
군 복무 중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100여권의 독서를 하였다. 그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글귀가 있다. ‘간절하게 꿈꾸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꿈꾸는 다락방 - 이지성) 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밤하늘이라는 도화지에 꿈이라는 별을 그려 나갔다. 언젠간 그 꿈을 실현시켜 밤하늘에
빛나는 수억 개의 별들처럼 빛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종사할 기상분야에서 최고가 되리라’ 그 밑바탕엔 공군 [항공기상관측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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