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2008년 그날도 어김없이 군대라는 용어가 날 따라다니고 있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군대로 입대하기 시작하고, 나도 덩달아 빨리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군대를 지원하고
신체검사도 받았지만 군대에 쉽게 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나보다 먼저 지원한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내가 못 가게 된 것이다. 그 후로 하루하루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를 하던 도중 군대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군대에 있는 친구는 나에게 좋은 추천을 하나 해주었다. 그건 바로 특기병에 지원하라는
친구의 목소리였다.
바로 인터넷에 특기병을 검색해보고 어떤 지원병들이 있나 찾아보았다. 네이버 지식인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운전병이 제일 편하다고 추천을 해주었다. 그 당시 운전면허가 없던 나에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운전면허가 없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쉽게 지원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 흐르고 불안감과 초조함은 더욱더 생기기 시작했고,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엉뚱한
고민을 해보았다. “내 전공은 군대에서 필요하지 않나?” 다시 한 번 네이버 지식인에 내 전공을 검색해
보았더니 정훈병과 통신병이 존재한 것이다. 정훈병과에서는 군대내 신문방송을 주로 다루고
통신병에서는 통신과 사진을 주로 다룬다는 지식인 글이 올라왔다. 그 순간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문장이 떠올랐다. “바로 이거다!”라는 문장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바로 병무청사이트에
들어갔지만 워낙 소수인원이고 인기도 좋은 특기병과라 한자리가 나올까 말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집 공고가 나오면 면접도 함께 보기 때문에 부담감은 더욱더 커지기 시작했다. 특기병 모집공고
날짜가 나랑 안 맞던 그 시기, 그 후로도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잠시 군대를 포기하고 대학교를 한 학기 더 다니게 되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8월이 왔다. 8월이면 학교 방학도 끝날 무렵이고 이제는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소총수나 포병으로 지원하기 위해 병무청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미련이 남아있던 나는 혹시 몰라 특기병 지원에 들어갔고, 우연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처음 들어보는 특기병들이 많았다. “시청각장비운용병, 시청각장비수리병”등등. 처음 들어보는
특기병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시청각장비운용병에 눈이 들어왔고 시청각장비운용병을
클릭하고 들어갔더니 모집인원에 공석이 난 것이다. 그 날짜는 바로 2008년 9월29일 나에게 딱 좋은
날짜였다. 불과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존재했다. 모집공고에 시청각장비운용병과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영상 쪽이라는 것이다. 군대에도 이런 게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청각장비운용병이 생긴 지 얼마 안됐다고 했다. 바로 지원을 누르고 입대를
신청했다. 그런데 면접도 없이 한 번에 지원이 된 것이다. 그것은 조금 의아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군대라는 큰 공간에 내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군대 한 번 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그 후, 20대의 행복한 한 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는 한 달 동안 내 주변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고 친목도 쌓았다. 군대 가면 쉽게 만날 수 없기에 미리미리 한 달 동안 나만의 행복을
채워갔다. 2008년 9월 29일 육군훈련소 입대다. 훈련소의 아침은 밝았다. 아무 탈 없이 군대가 나를
반겼다. 훈련소에서는 특기병에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다 같은 훈련병이기 때문에
훈련병 시절을 다 끝낸 후, 특기병 관련 후반기나 아니면 특기병 처부로 바로 자대배치를 받는다.
훈련소의 마지막 밤이 왔다. 내일이면 특기병의 자대배치다. ‘나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한편으로는 기도도 하면서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다음날,
특기병 하나둘씩 자대배치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처음 들어보는 곳에 발령을 받았다. ‘육군3사관학교’
이라는 곳이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군대학교 즉 소위를 양성하는 곳이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머나먼 대구를 거쳐 영천까지 도착했다. 태어나서 영천은 처음 가봤지만 영천이란 곳이 낯설기도
했지만 기분 좋게 와 닿았다.
육군3사관학교에 자대배치를 받고 선임들을 만나고 시청각장비운용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정말 신기했다. 군대에 카메라도 있고 영상장비들이 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처부가 학교 전체를
책임지는 메리트 있는 특기병이란 것도 알게 되니 더욱더 몸에서 열정이 피어나고 빨리 작업을 하고
싶어졌다. 남들이 보기엔 ‘편하게 군대생활하고 왔겠네.’라고 하지만 우리도 훈련받을 건 다 받고 따로
처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뿌듯했다. 자기가 맡은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이등병 때 첫
카메라를 잡았고,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 사수는 곧 전역을 앞둔 병장들이 많아 인수인계도
수월하지 못했고 결국 나 혼자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간부님한테도 많이
혼났고, 다른 선임들한테도 많이 혼났지만 그래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나면 보람을 느꼈고 내 전공이
녹슬지 않고 2년 동안 여기서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버티고 또 버텼다.
이등병 때는 열심히 뛰어다닌 거 같다. 일병이 되면서는 후임이 들어오고 후임에게 멋진 선임이 되기
위해 일병 때도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고 준비하고 지시하고 한 것 같다. 이등병, 일병 때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상병 때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몸에 배이다 보니 힘들다는 것보다는 군대의
시간은 안 간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내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중촬영자격증을 준비했다. 수중촬영에 대한 공부를 위해 관련된 책자를
구입했고, 휴가에 맞춰 나가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자격증을 따기에는 쉽지 않았다.
하필이면 군 생활 때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바람에 8개월 동안 나가지 못했다. 휴가를 못 쓴 것이다.
결국 자격증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 미루고 병장 때 나가서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드디어
병장의 계급을 받았다. 계급의 무게는 무거워졌다. 전역을 앞두고 처부가 새롭게 변하고 방송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시간이 흐르니 방송에도 퀄리티가 높아졌다. 지난 시간 육군3사관학교를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게 생각이 나고, 전역을 앞두고 나니 후임들에게 내 영상 비법을 다 전수해주고
하나둘씩 자리에서 나오니 마치 은퇴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은 싫었고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9월 29일 육군3사관학교 병장 이정건이 전역신고를 하는 날이다. 중대장님과 처부센터장님께
전역신고를 하고 처부에서 나를 위한 선물을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바로 제1회 육군3사관학교
영상미디어 경력증명서였다. 너무나도 뿌듯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하고 인정을 받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묘하게 눈물이 흐를 뻔 했지만 남자답게 꾹 참았다.
그렇게 전쟁 같은 군대를 전역하고, 전역과 동시에 대학교 복학 통지서가 왔다. 사회에 적응도 못하고
군말 없이 학교에 칼 복학을 했다. 하지만 칼 복학도 나쁘지 않았다. 군에서 하지 못한 수중촬영자격증
공부를 준비했고, 대학교에서 직접 진행하는 영화 제작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는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고, 그 결과 현재는 수중촬영자격증을 취득했고 영화도 30분
분량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향후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피 같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대학생이란 신분을 떼어내고 진정한 방송인이 되기 위해 취업준비를
했고 이력서도 넣고 면접도 진행했다. 그 결과 SBS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에서 조연출로 입사하게
되었다. 만약 군대에서 내 전공을 살릴 수 없었더라면 나에게 이렇게 좋은 기회는 찾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기병은 좋은 제도인 것 같고 군대 정신과 자신의 실력 등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얻을 수 있다. 특기병이라고 해서 군대에서 논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타 훈련병과 같이 훈련도 받고 남들과 다른 기능이 하나 더 있을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한발 다가가고 진행한다면 나와 같은 인원들이 많아 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시청자들을 위해 발 빠르게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을 송출하고 방송을 위해 이 한
몸 다 바치고 있다. 나의 최종목표는 PD가 되어 프로그램을 하나 맡는 게 꿈이다. 이왕 시작한 영화와
방송 인생은 평생 가야 될 덕목이고 내 전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고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 지금 고민하고 있을 여러분! 특기병에 대해 고민하지 마세요. 자신의 꿈과 미래가 보인다면
지금 바로 특기병에 지원하셔서 자신의 실력을 키우시고 군 정신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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