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장을 갔다 오는 길, 휴대폰 진동소리에 화면을 본 나는 잠시 하던 동작을 멈추게
되었다. 병무청에서 온 문자 한통. 보통 동원이나 예비군 알림으로 유용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문구가 있었다.
‘자격, 면허, 전공을 살려 특기병으로 복무 후 전역한 대상자 중 군복무 특기가 취업에 도움이 된
사례공모’
군 시절 국방일보나 정신교육 시간에 들었던 선배들의 이야기가 이런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니
감회가 새로웠고 나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을 것 같은 군 생활이 끝난 뒤에는 기억
저편에 두고 있었는데 다시금 사격장의 싸한 화약 냄새가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 지금과 2주도 차이가 나지 않던 무더운 여름날 어머니와 형의 배웅 속에 육군훈련소에 입소를
하였다. 대학교에서 기계공학과를 전공한 나는 군 생활 선배인 형의 추천으로 특기번호 2912 탄약검사
정비병으로 자원하여 입대를 하였다. 형의 추천도 있었지만 탄약이라는 이름에서 주는 약간의
무서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군 생활이 아니고서는 다시 들어볼 수 없는 단어라는 생각에 자원하게
되었다.
5주간의 훈련소 생활 후 종합군수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밖에 있을 때에는 단순하게만 들었었는데
굉장히 체계적으로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교수님들이 있어서 인상 깊었었다. 탄의 원리, 유래, 종류,
취급방법 등을 배우면서 자대로 갈 준비를 하였다. 내 자대는 충북에 있는 탄약사 예하의 부대였다.
당시는 몸을 쓰는 게 익숙지 않아서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그것이 다 흔히 말하는
현장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기계공학과를 나왔지만 앉아서 문제만 풀 줄 알았지 실제로 작업 도구나
운반기계를 가까이서 볼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작업 현장은 고된 땀이 흐르는 곳인 동시에
현장실습의 장이었다.
전반적으로 탄약부대는 탄약고를 관리하며 탄수불을 관리한다. 특히 우리 부대는 주로 폐탄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에는 탄약고를 방호하고 예초기로 주변 풀들을 쳐내며 관리를 했다.
5톤 트럭에 한가득 들어오면 지게차를 이용해 나르고 탄약고에 효율성 있게 정리를 하곤 했다. 난
기계공학도로서 그 당시 모터를 이용하여 풀을 자르는 예초기와 작은 몸집에도 힘이 좋은 지게차에
굉장히 호기심이 갔다. 계급이 올라가면서 예초기를 돌려봤을 때에는 온몸을 떨게 하는 진동에 피로를
느끼며 진동을 낮추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고, 비록 지게차는 자격증이 있는 운전병들이 몰아서
몰지 못하였지만 곁에서 보며 지게차의 출력이 좋은 점에 대해서 후임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했다.
주로 공학도로서 효율적인 것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생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있었다.
옆 탄약창에서 인명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또래의 병사가 지게차 운전도중 빗길에 과속을
해 전복되며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항상 곁에서 작업을 해 와서 친숙하고 안전한 기계라는 생각을
했는데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지게차는 무거운 하중을 드는 만큼 자체 무게가 엄청나서
넘어질 시에 사람이 깔리면 인명피해로 직결되는 기계다. 우리 주변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계들이
한편으로는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앉아서 하는 경험이 아닌 직접 땀을 흘리며
배운 것을 느끼게 해줬던 군 시절 현장은 안전이라는 숙제를 남겨주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항상
안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던 것 같다.
‘지게차에 충격이 가해졌다는 것은 이미 사람이 깔렸을 수도 있으니 일반 승용차의 에어백과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경사에 따른 안전장치가 나온다면 더 안전하진 않을까?’
아이티 대지진을 보면서 ‘포크레인 포크부분에 열감지 센서가 있다면 건물더미에서 사람을 구할 때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지 않을까?’와 같은 어쩌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군 생활을
겪으며 느꼈던 사고의 변화는 지금의 내 직장 선택에 큰 요소로 작용했다.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입니다.’ 전역 후 취업시즌이 되었을 때 우연히 TV광고에서 본 멘트인데
출장 후 봤던 병무청의 문자처럼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느낌이 왔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나의 평생직장이 된 회사의 슬로건이다.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굉장히
아리송하다고 느낀 말이었는데 굉장히 와 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사건을 계기로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그 문구를 보고 발길을 멈출 수 있었을까? 문구에서처럼 주변의 사소함을
인지하고 고민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라는 조직을 알게 되고 근로자의 안전이 가장의 안전이고 가장의 안전이 가족이 안전,
나아가서는 국가의 안전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산업재해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관임에 매력을
느껴 틈틈이 준비를 하게 되니 어느덧 면접을 준비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앞선 전공 질문에서
의욕만 앞서고 만족할만한 대답을 못한 나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면접관께서 면접 보는 다섯 명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평소 지게차가 안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보세요’
지금의 내가 이 회사에 있게 한 질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자격증에 적인 부분, 안전벨트 정도는 모두가
할 수 있는 생각이었지만 평소에 진지하게 고민해본 내 답변은 면접관들의 마음에 들어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현재 나는 산업현장을 돌아다니며 산재가 나지 않도록 예방을 하고 근로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전공과 관련이 있는 특기를 택해 군대를 갔다 온 나는 가장 크게 꼽는
장점은 미리 겪는 사회, 미리 보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군 시절 때 했던 작업들과 보았던 기계들은
지금의 내가 매일 보는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 때 책상에 앉아서 넘기며 봤던 이론과 실제
현장과의 차이를 잡아주는 좋은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우리 회사로 안전점검 의뢰가 들어와서 나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안양에 있는 유격부대에서 시설 안전점검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군대는 많이 변화하고 있었다. 예전의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작업이 아니라
안전 전문가들에게 병사들의 훈련시설을 의뢰하는 상황은 새로우면서도 굉장히 뿌듯하게 다가왔다.
훈련 시설을 안내하는 부사관은 겸손하지만 굉장히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 보여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은 사회라는 군대는 어찌 보면 사회보다 더 다양한 보직, 더 다양한 상황,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크고 작은 문제들이 어우러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군대도 사람이 어우러져 있는 만큼 잘하는 점,
좋아하는 점들을 본인이 잘 인지하고 훈련소에서부터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면 시간만 보내는 2년이
아닌 사회를 준비하는 활기찬 병영 생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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