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 청춘예찬

[스크랩] 나의 청춘은 지금이 시작이다

조우옥 2015. 1. 6. 04:06

 

 

2013년 7월 29일, 그렇다. 나의 입대일이다. 20대의 청춘(靑春) 나는 대한의 남아로서 조국과

국민들의 안전, 그리고 보탬이 되리라! 가슴속으로 수백, 수천번을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으로 향했다.


그해 여름은 따스했다. 나는 인천 남구 학익1동에 있는 인천징병검사장 에서 신체등급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곧, 안타까운 신체등급 검사결과를 통보받게 되었다. 나는 신체적 문제로 인해서 최종 신체등급 4급을 부여

받았다. 이는 현역입영 대상자가 아닌 공익대체 근무요원 즉 현재의 사회복무요원으로 입영을 하게 되는

등급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공익대체근무요원은 현역 입영대상자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로운 조금 더

편하다면 편하다고 할 수 있는 조건에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 할 수 있는 입영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가 되어가고 있는 병역기피현상으로 고의로 자신의 몸을 훼손하는 등 의무를

피하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정녕 당신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인가?” 라고 . . .

 

나는 그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었다. 조국을 위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서 새로운 모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의 신체적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징병검사장을 찾은 후 현역

입영대상자로 번복되었을 당시 두려움과 설렘이 나의 머릿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내 과욕이 부른 선택은

아닐까?

하지만 그 고민은 입대 이후에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헬렌켈러의 명언이다. 나는 이 속담처럼 아무것도 아닌 인생은 살기 싫었다. 보다 의미 있게 사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었고 바람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장손이었다. 어느 자식의 부모든 자식들은 집안의 보물이겠지만 나 역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사춘기와 방황기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되고 어두운

날들을 보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군 입대를 할 시기가 다가오게 되자 고등학교 졸업 자격이라도 취득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틈틈이 공부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하다가 입대를 하게 된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7월 29일! 부푼 가슴과 긴장을 안고 부모님과 함께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으로 입영을 위해 출발하였다. 말이 없는 차 안은 그날따라 너무나도 조용한 것

같았다. 다치지 말고 건강히 다녀오라는 어머니 넌 내 아들이니 멋지게 견뎌낼 수 있다는 아버지, 두분의

걱정 가득한 말씀 한 마디 한마디가 나의 눈시울을 적셔오고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동기들과

함께 입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징병 신체검사를 재검사 받고 현역 입영통지서를 들고 왔을 때

후회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하시곤 했다. 하지만 나의 모국을 사랑하는 의지와 굳건한 다짐을 뒤로 하기엔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훈련단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전우애와 군인정신 그리고 북한이 왜 우리의

주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6.25전쟁에 관한 도서를 읽은 적이 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일제히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감행함으로서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험한 도전이었던 6.25전쟁은 3년간 지속되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우리의 땅을 피로 물든 절망의 땅으로 만들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수많은 피를 흘린 6.25

전쟁으로 인해 38도선으로 그어버린 경계선은 오늘날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 6.25 당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장병들과 애국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항상 긴장을 유지 한 체 생활을 하고

있다. 전 인류가 더 풍요롭고 평화로운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경쟁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과 항상

대치하여야 하며 외부로는 여러 나라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 가야하는

어려움을 군생활을 하며 더욱 몸소 깨닫고 체험하고 있는 게 입대 후의 나의 모습이다.

 

내가 만일 군대라는 곳을 오지 않고 몸소 체험해 보지 않았다면 나는 분단국가의 진면모를 모르고 안일한

생각을 갖고 청춘을 헛되이 보낼 뻔 했다는 생각이 가끔 들고 한다. 입대 전에는 분단국가라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지 직접 나의 피부로 분단의 아픔과 위험을 느끼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군인의 신분이

되어보니 북한에 관한 이야기나 뉴스 매체등에 관하여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이러한 유무를 나 스스로

판단 할 수 있게 되는 안보의식을 갖추게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위기의식을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해외로 나가 대한민국 국기를 보고 한국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군대라는 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제 나도 군인이고 내가 나의 책임을 다해 조국을 위해 충성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매번 새롭게 하게

된다. 모든 것에는 꼭 해야 하는 필연적인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바른 도리와 자기의

책임을 다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 한다면 흘러가는 이 시간이 낭비가 아닌 훌륭한 결과물이 생겨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멋지고 훌륭하고, 의미 있게 채워 나가는 중간과정이 군복무이고

맡은 바 소임을 완수하는 것이 대한의 아들로서 서서히 완성되는 과정이 군인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성실하게 책임을 다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가 과거에는 굉장히 불안하고 극복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강한 정신력과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치 마법과도 같은 힘이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원 병역이행을

고민하는 과거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입대 예정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낭비가 아닌 새로운 모험이고 체험이다. 제2의 인생을 열어가는 한 축이며 또

다른 경험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 설레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지금의 나는 입대전과 상당히

많이 변해 있다. 입대전의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단체생활을 싫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인보다는

단체와 협동을 중요시 하는 성격이 되었다. 전우를 도와주고 전우에게 도움을 받고 나의 이기심이 싹 사라졌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군인정신이 깃들어 버린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다. 지금은 좋은 선임들과 좋은

후임들을 만나서 성실히 군복무중이다. 얼마 전 첫 정기휴가도 나가게 되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도

경험하게 되었고 입대 후에 정말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뿌듯한 경험을 할 때마다 공익대체근무요원이 아닌 현역입영대상자로 입영을 한 것이 내가

정말 올바를 선택을 한 것이고 나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자신의 한계점과 단점을 극복하여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청년들이 계속하여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먼 미래에 누군가가 나의 20대 초반을 묻는다면 나의 청춘을 ‘조국과 국민과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바쳤노라’ 라고 대답을 하고 싶다. 앞으로의 나의 각오는 남은 군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여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자랑스러운 내가 되겠다는 각오이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자랑스러워하시는 아들이 되고 싶다. 나의

청춘(靑春)은 지금이 시작이다.

 

 

출처 : 청춘예찬
글쓴이 : 굳건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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