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는 현재 대학 4학년이다. 봄, 여름이 지나고 낙엽이 떨어질 무렵이면 나 역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평소 ‘인문학(人文學)이란 사람(人)의 무늬(文)를 배우는 것’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사람이지만, 그 큰 가르침으로 어떻게 내가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랬던 내가 문화콘텐츠란 것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인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상상력에 새로운 기술, 전략을 더해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내 삶의 항로를 바꿔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한국 영화를 관람하고, 신인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다. 인기 웹툰작가인 강풀의 ‘순정만화’는 컴퓨터 모니터를 넘어 뮤지컬,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며 ‘원 소스 멀티 유즈’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와 같은 많은 젊은이들이 문화콘텐츠 산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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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 둘리’에서 ‘뽀로로’와 ‘라바’에 이르기까지, 인기 캐릭터를 필두로 한 문화콘텐츠 산업은 이제 미래 대한민국의 먹고살거리가 되고 있다. |
대학에서 문화콘텐츠를 전공하는 유동필(24) 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이전에는 창업보다는 영상물이나 기획물 제작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본격적으로 창업에 눈을 뜬 건 대학 3학년 무렵이었다. “취업문이 날로 좁아지는 것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는 유 씨는 “최근 인문학 열풍과 더불어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새로운 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하는 것을 보고 창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만들고 팔 것이냐에 있다. 내 주변에도 재미있는 방송 프로그램, 이북 플랫폼, 이야기가 될 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는 결과물로 나오지 못하거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이내 잊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이를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야 할 지 몰라서,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기기를 사용하지 못해서, 돈이 모자라서, 어떻게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지 몰라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머릿 속에서 묻혀 버리기 일쑤이다.
대학생 고광현(21) 씨 역시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창업동아리에 들어간 이후 창업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는 요즘 새로운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데 한창이다. 이제 막 문화콘텐츠 창업의 걸음마를 뗀 그에게는 난관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일을 할 만한 제대로 된 공간이 없다는 것. 그는 “새로운 아이템을 기획하기 위해 좁은 강의실에서 회의를 해야 할 때가 많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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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분야 창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여러 난관이 많ㅇ다. 아이디어를 구상할 만한 마땅한 공간조차 이들에겐 풍족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
실제로 문화콘텐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기획과 회의를 할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강의실이나 열람실에서 시끌벅적하게 아이디어를 쏟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카페나 사설 열람실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드는 돈이 만만찮다. 제작이나 실연 등을 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들에게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창조융합벨트’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융복합 문화콘텐츠의 기획→제작→구현→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이렇게 조성된 생태계를 바탕으로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그 첫 단추는 서울 상암동 CJ E&M 빌딩에 자리한 ‘문화창조융합센터’이다. 문화창조융합센터에서는 모션 캡처 장비로 사람의 움직임을 디지털화하는 ‘모션 스튜디오’에서부터 융복합 콘텐츠 기획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미디어 라이브러리’는 물론 편집, 상영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프라를 무료로 제공한다. 문화콘텐츠 전문가들이 창작자에게 고충을 듣고 노하우를 제공하는 ‘그레이트 멘토링’도 여기서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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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조융합센터에 마련된 모션 스튜디오에서는 이렇게 사람의 움직임을 디지털화할 수 있다. 신청만 하면 누구나 무료이다. |
돈이 없어 아이디어를 펼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자금도 지원한다. 정부는 융복합 문화콘텐츠와 관련된 유망 프로젝트와 창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총 6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더불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문화콘텐츠 기업에 총 2,0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동필 씨와 고광현 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모두들 “이런 정책이 홍보만 잘 된다면 예비 창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주변에도 문화콘텐츠 기획과 창업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은데 꼭 알려줘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융복합 문화콘텐츠 창업자들을 위해 인프라와 전문가의 조언 외에도 무엇이 필요할까? 유동필 씨는 창업의 위험성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다. 유 씨는 “남의 돈을 빌려 시작한 창업이 실패해 받은 것을 갚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많다.”며 “이런 분위기를 깰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창업 준비자들이 주문한 것은 네트워크였다. 고광현 씨는 “단순히 창업센터를 세우는 데서 그치지 말고, 관심 있는 대학생들이 몰릴 수 있고 멘토링도 받을 수 있도록 창업 지원 네트워크를 조성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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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코리아랩에서 수련받은 창작자들은 문화창조융합센터에서 더 큰 기회를 얻게 된다. |
이에 따라 정부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위한 네트워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상암동에 세워진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시작으로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건물에 콘텐츠 제작과 사업화를 담당하는 ‘문화창조벤처단지’를, 홍릉 산업연구원 부지에 R&D와 인재육성을 위한 ‘문화창조아카데미’를 개설할 예정이다. 또 경기도 고양시에는 2017년 말까지 콘텐츠를 구현할 거점, 가칭 ‘K-Culture Vally’를 조성한다.
더불어 이런 인프라를 전국의 문화콘텐츠 기업·육성기관,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시켜 융복합 콘텐츠 기획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가령 서울을 비롯해 인천, 경기, 대구, 부산에 위치한 콘텐츠코리아랩에서 아마추어 육성과정을 마친 창작자들은 문화창조융합센터의 준 전문가 대상 콘텐츠 기획 지원과정을 밟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 황소현 사무관은 “콘텐츠코리아랩, 지원기관을 통한 문화콘텐츠 산업 지원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유기적 조직을 만들어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을 것”이라 말했다. 더불어 “인력 양성, 마케팅 지원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창업을 지원해 활발한 창업 분위기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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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관람하고자 대낮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잘 만든 문화콘텐츠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
문화는 우리 삶에 기쁨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하나의 영화, 뮤지컬, 만화, 음식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와 일자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 세계를 넘나들며 돈을 벌어들이는, 작은 펭귄 뽀로로에서 수많은 연극·뮤지컬 무대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호황을 누리는 대학로, 우리 고유의 멋을 담은 옷과 도자기, 우리의 문화를 가까이에서 느끼길 원하는 관광 1번지 인사동에 이르기까지 문화콘텐츠는 우리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작지만 큰 힘이다.
지도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려는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새록새록 자라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주변에는 대학생들이 노트북을 부여잡고 새로운 공연 티켓 발권 시스템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이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문화창조융합벨트가 만든 놀이터와 만난다면 그 결과는 ‘대박’이지 않을까?
문화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싶은 복학생. 정책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이
를 만나고 그동안 알지 못햇던 대한민국의 다양한 모습을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