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정책기자

[스크랩] 개가 붓을 물고 난을 친다는 그 곳, 진도에 가다

조우옥 2015. 6. 17. 11:54

개가 붓을 물고 난을 친다는 그 곳, 진도에 가다

호남선 개통으로 더욱 빨라진 진도… 다음달엔 시티투어도 운영

이름만 들으면 절로 아리랑과 개, 그리고 영화 ‘명량’이 떠오르는 섬. 바로 전남 진도다. KTX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진도 여행도 한달음이다. 진도군은 다음달부터 관광객 500만명 유치를 위해 ‘KTX 진도아리랑 시티투어’를 운영한다. 지난 5일, ‘KTX 진도 아리랑 시티투어’ 현장 답사를 위해 1박 2일 진도에 다녀왔다.

오전 755분 용산역 출발 목포행 KTX. 서울에서 전라도 목포까지 정확히 2시간 32 만에 목포역에 도착했다. 이제 1시간 버스로 이동하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 인구 삼만육천의 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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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KTX (좌) 진도 지도(우)

KTX와 진도.

 

진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진도타워에 올랐다. 7층 전망대에서 진도의 먼 바다까지 내려다보인다. 바로 앞에 보이는 진도대교는 진도와 해남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쌍둥이 사장교다. 다리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해남 우수영, 오른편에는 진도 녹진이 보이고, 조류발전소도 보인다. 이곳은 교각을 세우기 힘들 정도로 물살이 세서 다리 양쪽에 강철교탑을 세우고 케이블로 다리를 지탱하는 방식의 다리를 완성했다고 한다.

전시된 명량대첩해전도를 살펴보며 진도대교 아래 바다가 운다는 울돌목을 내려봤다. 영화 명량속 장면처럼 울둘목의 좁은 해협을 지나는 밀물과 썰물. 이렇게 물이 역류할 때, 조선의 판옥선 13척은 왜적의 안택선 133척과 뒤엉켜 부딪치며 얼마나 무섭고 격렬한 전투를 한 것일까? 명량대첩의 승리만을 기억했기에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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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타워(좌) 진도대교(우)

진도타워와 진도대교.

 

점심으로 먹은 게장백반은 비리지도 짜지도 않아 꿀맛이었다. 또 항암효과에 좋고 면역력에 좋다는 노란색 울금으로 만든 막걸리와 차도 마셨다. 따라놓은 막걸리 빛이 꼭 바나나우유같고 향도 독특하다. 앞에 앉은 문화해설사 이평기님께 지난해 진도의 안부를 여쭤보니, 진도사람은 이젠 세월호에서 벗어나 그 이전의 진도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부탁한다며 울금 막걸리 한잔을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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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금막걸리,울금차,진도게장

울금막걸리, 울금차, 진도게장.

 

진도에 가면 개가 붓을 물고 난()을 치고 진도 사람은 빗자루만 들어도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 진도에 와서 예술을 논하지 말라.”

다시 버스에 오르자 이평기 문화해설사의 구수한 입담에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진도는 ‘삼보삼락(三寶三樂)’의 고장이다. 영리하고 충성심 강한 진도개, 다른 지역에 비해 그 효능이 탁월하다는 진도 구기자, 아무리 끓여도 미역이 싱싱하게 살아 있다는 진도 미역이 진도의 3가지 보물이다. 진도 아리랑, 진도 홍주, 그리고 진도 사람이면 붓을 잡는다는 서화가 또한 3가지 즐김거리다. 진도 홍주는 쌀과 붉은 색 지초라는 약재로 발효시켜 만든 진도 전통주인데 알콜 농도가 40도에 가깝다. 진도개기념일과 홍주기념일까지 있는 곳이 바로 진도라니 진도사람의 애착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진도가 예향(藝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서화가무(書畵歌舞 - , 그림, 노래, ) 유산의 맥을 끊지 않고 이어왔기 때문이란다. 진도 그림의 뿌리이자 한국 남화의 고향인 운림산방(국가명승80)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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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운림산방(국가명승80호).


짙은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은 한국 남종화의 성지며,
쌍계사 상록수림으로 이어지는 첨찰산 기슭에 있다. 이곳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며 조선 말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이 고향 진도에 내려와 집을 짓고 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연못과 정원이 아름답고 소치선생의 생가와 영정을 모신 사당, 그리고 소치기념관이 있다. 그런데 한 집안에서 5대째 화가가 나왔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바로 이곳이 그렇다. 1대 허련 부터 5대 허진까지 화가가 배출된 곳으로 예향 진도의 자랑이다.

이제 진도의 보물 진돗개를 만나러 진도개(천연기념물 제53) 테마파크로 향한다. 그런데 진돗개’가 맞을까? ‘진도개가 맞을까? ‘진돗개’가 표준말이긴 하지만, 진도에서는 진도개라고 한다. ‘진도개의 원산지인 진도(珍島)를 알리고 진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의 다른 개와도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다.

진도개 선수촌에 들어서니 진도개 공연단의 공연이 시작됐다. 조련사와 눈을 맞춘 백구와 황구가 조금 긴장한 듯 신호에 따라 줄넘기를 하고 5개나 되는 링을 뛰어 날아서 통과한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오는 심부름도 영리한 진도개라면 어렵지 않다. 두발로 서서 춤을 추거나 붓을 물고 도화지에 그림 그리는 뒷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관람객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부디 이곳 진도에서 대한민국 진도개의 혈통이 잘 보존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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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선수촌에서 진도개 공연

진도개선수촌에서 진도개가 공연하고 있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오래된 3층짜리 한옥 미술관이 보인다. 바로 장전미술관이다. 우리나라 예서체를 대표하는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 선생이 고향 진도에 내려와 사비를 들여 세웠다고 한다. 원래 남진미술관’이라는 명칭이었는데 목포 출신 가수 남진과 혼동할 우려가 있어 장전미술관으로 바꿨다고 한다.

미술관 정원에는 아름다운 조각과 수석, 분재 등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미술관에 쏟은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시실에는 하남호 선생의 작품과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한호 한석봉 등 희귀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또 한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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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장전미술관 남진문, 장전미술관 정원, 정약용의 매화도
장전미술관 남진문, 장전미술관 정원, 정약용의 매화도

 

이제 남도 석성이라 불려지던 남도진성(사적 제 127)으로 향한다. 이곳은 대몽항쟁을 펼쳤던 삼별초가 해안지방 방어를 위해 쌓은 성으로 진도를 떠나는 마지막까지 항전을 벌이던 유적지라고 한다. 작은 성이지만 산으로 둘러 쌓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니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기 위한 최적의 요충지다. 남문 너머로 개울을 지나는 단운교와 쌍운교는 앞에서 보면 무지개처럼 보여 수수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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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시계방향순 남도진성, 단운교, 쌍운교, 남도진성 돌담

좌상 시계방향순 남도진성, 단운교, 쌍운교, 남도진성 돌담.

 

저녁이 되자 마음이 바쁘다. 진도의 또 하나의 명물 세방낙조가 기다리고 있다. 도해 수평선 위로 지는 세방낙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볼 수 있는 낙조(落照). 이곳 세방리(細方里)는 서해와 남해가 만나며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기에 그 빛의 파장이 깊고 신비롭다. 발가락을 닮은 섬(양덕도), 손가락을 닮은 섬(주지도) 20여개 섬들의 모습도 재밌고, 그 섬 사이로 매일 매일 해가 들어가는 장소가 달라서 다양한 낙조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드디어 낙조가 시작되고 사선으로 떨어지는 붉은 빛의 파장이 장관을 이룬다.

누군가 홍주를 따라주며 낙조의 빛과 비교해보니 낙조도 홍주도 그 붉은 빛은 황홀했다.

‘.......때로는 꿈도 꽃이 되는가

저 놀빛에 붉게 젖어

한 생애 황홀한 발자국을 찍네’

(세방낙조 하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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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방낙조

아름다운 세방낙조

 

저녁이 되어 찾아간 곳은 진도 소포리 마을이다. 이곳은 마을 주민 모두가 소리를 하고 춤을 춘다는 전통 소리마을이다. 김병철(53) 소포리 전통민속 전수관장은 자신을 농부라 소개하며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유기농 쌀과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10년동안 유기농을 하면서 적자를 봤지만, 소포리 마을을 꿈이 있고 행복한 마을로 만들고 싶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경쟁력있는 문화를 알리고 싶다’고도 했다. 소포 마을 주민이 준비해준 유기농 쌀로 만든 밥과 채소로 푸짐한 저녁상을 받고 공연을 기다렸다.

첫 무대는 밭일을 하다가 왔다며 곱게 한복을 입으신 83세 한남례 할머니의 흥그래 타령이다. 고달픈 삶이 한이 맺혀 나오는 노래라고 하는데, 자신의 긴 이야기를 한풀이하듯 불러서 육자배기와는 사뭇 달랐다.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임강택(58) 씨의 진도북춤은 두 손으로 북을 치는 모습이 색달랐고, 상모를 돌리는 홍복동(83) 전수자의 여유있는 모습도 큰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모두 일어나 하나가 되는 강강술래로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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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한남례(83세) 임강택(58세) 홍복동(83세)

한남례(83세) 임강택(58세) 홍복동(83세)

 

다음날 아침, 진도 팽목항에서 고속페리를 타고 1시간 만에 관매도에 도착했다. 원래 한글 볼를 써서 볼매도로 불렸는데 조선후기 관매도로 바뀌면서 매화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매도는 걷고 싶은 매화의 섬이 되었다.

관매도는 국립공원 1호 명품마을답게 볼거리가 많다. 과거 호수였던 관매도는 단층, 습곡 등 지각변동을 겪었는데, 바로 앞에서 윗부분만 남아있는 길이 2m의 목재화석(규화목)을 발견하곤 반가웠다. 관매8경중 1경인 관매도 해변은 3km에 이르며 수심이 깊지 않고 밀가루같이 고운 황색모래가 깔려있어 맨발로 걷기에 좋다. 해변 뒤로는 방사림이 심어졌는데 300년 역사의 곰솔 숲이 장관이다. 돌이 많은 진도라서 어딜가도 돌담이 보이고 벽화가 그려져 있다. 꼬불꼬불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린시절 술래잡기가 생각난다.

마을 언덕길로 오르다가 우실’과 만났다. ‘우실’은 재너머에서 부는 바람으로 부터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이다. 마을 경계를 표시해 재앙과 역신을 차단하는 민속신앙의 의미도 담겼다. 상여가 나갈 때, 산자와 죽은자의 마지막 이별공간이 된다니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하늘다리로 향하는 길에서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 212), 구실잡밥나무, 나팔꽃을 닮은 갯매꽃, 흰꽃이 피다가 노란색으로 변한다는 인동초도 봤다. 다양한 종이 서식하는 이곳은 훌륭한 자연생태관광지다.

드디어 관매5경 하늘다에 닿았다. 큰 바위를 잘라서 나눈 듯, 벼랑끝에 다리가 걸려있다. 바람이 다리를 치고 지나갈 때면 짜릿한 기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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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시계방향순 관매도해변, 하늘다리, 곰솔숲, 관매마을 돌담벽화

좌상 시계방향순 관매도해변, 하늘다리, 곰솔숲, 관매마을 돌담벽화.

 

12일 동안 진도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찍으며 이곳이 보배 섬이라 불리는 이유를 찾았다. 문인들의 유배지였던 진도는 농업이 발달해 책을 읽다가도 농사를 짓고 힘들면 술 한잔에 노래 한 가닥을 뽑았을 것이다. 저녁이면 세방낙조를 바라보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낮에는 주인과 벗하고 밤이면 주인을 지켜주는 진도개가 있으니 세상 무엇이 부럽고 두려울까!

이렇게 진도는 하늘이 준 자연과 더불어 모든게 하나가 된다. 나도 욕심을 내려놓으면 진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음에 진도에 가면 진도개와 함께 춤추며 홍주에 취해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



한선주
정책기자단|한선주godgoldi@naver.com
인생의 반은 나이팅게일로 살았고, 나머지 반은 이야기 전달자로 남고 싶다.
출처 :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글쓴이 : 호박조우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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