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어르신, 광복 70년 알리기 선봉에 서다![광복70년, 70가지 나라사랑 이야기 ⑭] 광복드림팀 최고령 서포터즈 윤용황 어르신“광복드림팀 일동은 국민 모두가 민족의 국난극복과 눈부신 발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광복 70년의 의미를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선다.” 지난 7월 7일 광복 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식 서포터즈 광복드림팀 발대식에서 선서를 한 윤용황 어르신은 70명의 광복드림팀원 중 최고령인 80세다. 그는 광복 70년을 맞아 광복의 의미와 기념사업을 국민에게 전달한다(드린다)는 뜻으로 구성된 광복드림팀 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경기도 실버정보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을 정도의 실력으로 관련 정보를 전달한다. 최근에는 왕복 4시간을 손수 운전해 충남도청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초상화전에 다녀와 재빨리 기사를 올렸다. 2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과학창의축전에도 팀원 중 가장 먼저 달려갔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전차를 보며 “전 직장이었던 기상청이 이 옆에 있었다. 당시 월급 대신 받은 밀가루를 어깨에 메고 전차에 실어 집으로 운반했다.”라며“ 나중에는 밀가루가 무거워 돈으로 바꾸기도 했다. 돈으로 바꾸면 중간 마진을 떼기 때문에 배불리 먹을 양식을 사지 못했다. 해서 다시 밀가루를 전차에 싣고 가 수제비와 칼국수를 만들어 배불리 먹었다.”라고 회고하며 광복드림팀 지원동기를 밝혔다.
그는 “광복드림팀 지원서에 ‘순국선열을 비롯,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민족정기를 선양하고 국가발전과 평화통일에 어느 누구보다 이바지해야 할 광복회 일원으로서 광복드림팀 활동에 참여했다'라고 썼다. 그랬더니 뽑아준 것 같다.”고 웃었다. 성함이 예사롭지 않다고 묻자 “할아버지가 큰일을 하라며 한자로 ‘임금을 쓴다’는 뜻인 용황(用皇)이라 지었다. 광복드림팀 같은 활동이 할아버지가 원했던 일인 것 같다.”라며 “선친은 일제치하 때 3·1운동과 단발령, 창씨개명에 불응해 고초를 당하는 와중에도 마을학당에서 한글을 가르쳤다. 광복 후 교장으로 재직 중 일제 만행의 후유증으로 1947년 타계하셨다.”라고 가족사를 전했다.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국가유공자증서와 참전유공자증서를 보여주며 “6·25때는 소년병으로 입대해 내 고향 강화도를 사수했다. 1·4후퇴 때 중공군이 서울과 오산까지 점령했지만 강화도는 안전했다. 소년병들의 위력이 대단했다.”라며 “1954년에 정식 입대해 하사로 4년 간 복무했다. 전역 후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에서 연수를 받은 것을 계기로 35년 간 기상청에서 근무했다.”라고 지난날을 더듬었다.
1996년 대전지방기상청장을 끝으로 정년퇴직을 한 그는 “기상청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지진과 태풍을 주제로 체험 및 전시물 해설을 하고 있다. 전직 공무원으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라며 “광복회 이사를 거쳐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진정한 광복은 남북통일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다. 비단 통일은 되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뛴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광복 70년을 맞게 됐다. 앞으로 후손들이 할 일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될 때까지 힘을 보태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각계각층의 국민 70명으로 구성된 ‘광복드림팀’이 이 드라마를 쓰는데 동참하기 위해 깃발을 올렸다. 12월말까지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을 슬로건으로 다양한 광복 70년 기념사업 홍보활동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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