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 청춘예찬

[스크랩] 인천 자유공원에서 본 맥아더 장군

조우옥 2014. 5. 2. 11:01


 

인천 자유공원에서 본 맥아더 장군.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명언으로 맥아더 장군이

상하원 연설에서 남긴 말로 군인의 애국심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맥아더 장군을 기리는 공원이

있다고 해서 인천 자유공원으로 가봤습니다.



인천에 자리잡은 자유공원은 188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입니다. 당초 인천 제물포

항에서 외국의 문물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입구 역할을 맡아 근처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해 만국공원

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서공원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1957

한국전쟁 때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동상을 건립하면서 자유공원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습니다.



 

<자유공원 지도>

 

벚꽃이 만개한 자유공원의 모습이 아름다웠는데요, 특히 공원 정산에서 바라보는 인천의 모습이

절경이었습니다.


<벚꽃이 핀 자유공원의 모습>

 

그리고 공원에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


맥아더 장군은 1880년 미국 아칸소 주의 리틀콕에서 태어났습니다. 맥아더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각각

미국 남북전쟁,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진 미국-스페인 전쟁에 참여한 군인가족이었습니다. 맥아더 역시

마찬가지로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했습니다.



1893년 텍사스군사학교를 입학하였고 1899년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를 입학하여 1903년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병역명문가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세계1차대전을 비롯한 각종 전쟁에 참전하여

뛰어난 무공을 세웠으며 7번의 은성무공훈장을 받으며 뛰어난 지휘관임을 입증했습니다. 그 후

세계2차대전에서 필리핀을 재탈환하기 위해 연합군 남서태평양 방면 사령관으로서 대일작전을 비롯해 각종

전투를 이끌고,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19506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제연합군(UN) 최고사령관으로 작전을 지도했습니다. 그는 당시

남하하는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1950915일 바닷물이 차올라

만조가 되는 날, 작전을 감행하여 전세를 역전시켰고 인민군을 압록강 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다시 남하하는 중공군을 막기 위해 만주폭격 등 작전을 건의했지만 전쟁의 확대를

우려한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411일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됐습니다.



60여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맥아더 장군의 군인 정신은 그의 명언처럼 아직도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국군 장병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맥아더 장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모습>

 

 

<취재 : 청춘예찬 정석호 대학생기자>


 


출처 : 청춘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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