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정책기자

[스크랩] 어촌마을 골칫거리 ‘굴 패각’ 재활용 길 열렸다

조우옥 2015. 3. 13. 19:08

어촌마을 골칫거리 ‘굴 패각’ 재활용 길 열렸다

[생활경제 살찌우는 규제개혁 대표사례 10선] ① 굴 패각 매립규정 개정

[경남 사천] ‘부르릉!’ 차 소리에 굴 작업 하우스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다.

“할머니, 제가 온 줄 어떻게 아셨어요?” 농을 건네자 “차 소리만 들어도 단골인 걸 단번에 알아채지.”하면서 얼른 안으로 들어오란다.

“오늘은 좀 한산하네요. 굴 까는 사람도 할머니뿐이고요.”라며 작업에 지장을 줄까봐 내심 걱정했는데, 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니 덜 미안했다. 잠시 중단한 작업을 계속하더니 갓 까낸 굴을 냉큼 손님의 입속에 넣어준다. 여러 번 권하는 바람에 당황스러웠지만,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는다. 쌉싸래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입 안 가득히 퍼진다. 자연산 생굴 맛에 정이 듬뿍 담기니, 이보다 더 호사가 있을까 싶다.

굴 패각 재활용 길이 열리면서 해안가가 깨끗해졌다. 그 너머로 장대를 꽂은 양식장이 이날따라 더욱 맑아 보인다.

굴 패각 재활용 길이 열리면서 해안가가 깨끗해졌다. 그 너머로 장대를 꽂은 양식장이 이날따라 더욱 맑아 보인다.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낙지포마을. 3년 전 우연히 이곳 해안가에 들르면서 굴 까는 할머니와 안면을 익히게 됐다. 70대 중반의 김현자(가명) 할머니의 얼굴은 정말 인상 깊었다. 희로애락의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역경의 삶을 대변하는 듯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온화하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을 연상케 했다. 남해안 패류 수출 여부를 결정할 미국 식품의약국(FDA) 실사단이 현장점검에 들어갔다는 뉴스에 굴 까는 할머니가 떠올랐다. 환경부가 굴 패각 매립규정을 개정하면서 재활용 길이 열렸다는 소식에 자연스레 발길이 이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3월 중순, 다시 찾은 해안도로는 말끔했다. 예전에는 굴 껍데기가 여기저기에 쌓여 볼썽사나웠는데, 깨끗한 모습으로 바다와 벗하고 있었다.

“할머니, 굴 껍데기가 안 보이네요. 하루에도 패각물이 만만치 않을 텐데….”라고 운을 떼자, “한곳에 모아두면 돼. 몰라, 누가 가져가는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겠지.”라며 별 관심 없이 대한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이젠 한시름 덜게 되겠네요. 굴 패각 재활용 길이 열렸으니까요.”라고 하자 순간 주름살이 펴진다. 굴 껍데기가 그들에게는 얼마나 애물단지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일손이 센 할머니가 기자 물음에 답하면서도 굴 까기에 여념이 없다.

일손이 센 할머니가 기자 물음에 답하면서도 굴 까기에 여념이 없다.

그간 굴 껍데기 처리 문제로 꽤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정부의 규제 다이어트로 배보다 배꼽이 큰 패각의 활용 경로가 열리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잠시라도 표정이 밝아진 할머니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폐 패각 재활용 소식은 어촌마을뿐만 아니라 외래객들에게도 희소식이다. 해안가에 널브러진 패각 찌꺼기로 눈살 찌푸릴 일이 없어졌으니까.

마침 이곳을 찾은 이인숙(52, 진주) 씨는 할머니가 집어준 생굴을 입안 가득 머금은 채로 “깨끗한 해안가가 맑은 바닷물과 어깨동무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개선된 연안 환경을 본 소감을 말한다. 그러면서 “역시 청정해역에서 캐낸 자연산 굴이라선지 달콤하다.”고 맛있게 품평한다.

환경부가 폐 패각을 공유수면 매립시설의 복토재로 사용 가능하도록 규정을 개정한 것이 어촌 환경을 깨끗하게 바꾸고 있었다. 그동안 굴 패각은 산업폐기물로 지정돼 폐화석 비료나 채묘용으로만 사용이 가능하고 매립은 불가능해 계속 쌓여만 있던 상황이었다. 규제 혁파의 위력이 현업 종사자에겐 희망을 지펴주는 불씨가 되고 있었다.

 

10여 군데 늘어선 굴 까기 하우스 작업장에는 겨울 한철 싱싱한 굴로 가득하다.

10여 군데 늘어선 굴 까기 하우스 작업장에는 겨울 한철 싱싱한 굴로 가득하다.

굴 껍데기 처리 문제의 해결 기미는 종사자들에게는 분명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생산과 가공, 그리고 식탁에 오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계화로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굴 까는 일만은 사람의 손길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직 어르신들이 나서서 해야 할 몫으로 다가선다.

“할머니, 아르바이트나 일손 구해 쓰면 좀 편할 텐데요.”라고 거들자 대뜸 “무슨 소리냐? 아르바이트생은 엄두를 못 내지. 이 일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할 수도 없어.”라며 “바쁠 때 일손은 일가친척이 총동원돼 도와주곤 하지.”라고 뭘 모른다는 듯 핀잔을 준다. 시집간 딸이 거들고, 어떨 땐 사돈까지 찾아와 도와준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작년 굴이 한창 상한가로 치솟을 김장철 대목 때 딸과 사돈 등 여럿이 굴 까는 광경을 목격했기에 수긍이 갔다.

그래도 할머니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아들이 굴 양식업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고있기 때문이다. 배로 5분 거리에 있는 바다 굴 양식장에서 아들이 굴을 따다 날라주면 어머니는 깐단다.

“장대를 꽂아 줄을 쳐서 종패 10개씩 뭉쳐 놓았다가 ‘난’이 붙으면 한 개씩 내어 는다.”며 하루에 낮과 밤, 물이 빠지고 들면서 자연스레 굴이 자란다는 설명에 신기했다. 그렇게 성장한 굴은 김장철이나 설에 많이 찾는데, 그 때면 아침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하루 12시간씩 굴 까기 작업을 한단다. 당연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세도 몇 천 원정도 차이가 난다는 말도 덧붙인다.

 

‘자연산 굴 먹는 법’ 레시피가 눈길을 끈다. 냉동된 굴은 그대로 끓는 물에 넣어야 탱글탱글해져 쫄깃한 맛이 되살아난단다.

‘자연산 굴 먹는 법’ 레시피가 눈길을 끈다. 냉동된 굴은 그대로 끓는 물에 넣어야 탱글탱글해져 쫄깃한 맛이 되살아난다.

아무리 한적한 시골 어촌마을이라고 해도 입소문으로 알음알음해서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 그래서 굴 판로도 다양하다. 수협 경매는 기본이고, 현지에서 직접 구입하는 사람을 비롯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주문 택배물품도 보낸다. 특히 추운 겨울이면 자연산 굴 구이 미식가들이 해안가로 찾아들면서 바닷가 풍미를 더해준다.

11월 초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어지는 굴까기 작업에 피곤할 만도 하지만 나름의 보람이 있다면 싱싱한 생굴을 도시민들에게 제공한다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당부한 말이 잊히질 않는다. “요즘 인터넷이 잘 깔려선지 몰라도 이 마을 곳곳이 통신망에 올려져 있다. 도시민들이 방문하는 건 마다하지 않지만 농작물을 훼손하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행위를 볼 때면 씁쓸하다.”며 실망감을 자아낸다.

“화가 날 때는 언제입니까?”란 질문에 “없다”며 단호히 잘라 말한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라는 말에 순박함이 진하게 묻어난다. 어촌마을 사람들은 ‘손톱 밑 가시’처럼 불필요한 규제를 풀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환경부의 규제 혁파로 굴 패각 재활용 길이 열린 걸 반긴다. 또한 자연을 오염시키는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걸 절감하기에 청정해역을 보전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썰물 때 물 밖으로 드러난 갯벌에서 바지락과 소라 등을 채취하고 있다.

썰물 때 물 밖으로 드러난 갯벌에서 바지락과 소라 등을 채취하고 있다.

“환경부의 규제혁파로 굴 패각 재활용 길이 열렸으니 기쁘다. 싱싱한 굴 생산으로 도시민들에게 신선한 식탁을 제공해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할머니의 환한 표정 이면에는 “외지인들이 바다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자연을 훼손하면 그 피해는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경고가 서려 있었다. 굴 까는 할머니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터전이 ‘노여움과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만 넘쳐났으면 한다.

“어촌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은 잠시 스쳐가는 곳이라고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말고 깨끗한 환경을 보전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는 할머니의 당부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허훈
정책기자단|허훈hhsju@hanmail.net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추구하는 프리랜서. 관심분야는 교육, 환경, 보건이고, 우리말글 살리는 데도 힘쓰고 있음.
출처 :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글쓴이 : 호박조우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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